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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던 타임즈

    모던 타임스(Modern Times)는 찰리 채플린이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1936년 무성 코미디 영화입니다. 채플린은 기계화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장 노동자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는 소외, 실업,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성 상실 등을 주제로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무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모던 타임스'는 채플린의 상징적인 피지컬 코미디와 표현적인 몸짓을 통해 강력한 사회적 논평을 전달합니다. 이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남아 있으며 메시지의 지속적인 관련성을 강조하며 현대화, 자동화, 대량생산의 비인간적 효과를 풍자합니다. 무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음향효과와 음악이 동기화되어 있는 "모던 타임스(Modern Times)"는 사회적 논평, 실제 코미디, 억압받는 모든 사람에 대한 채플린의 시대를 초월한 묘사로도 유명합니다.

    모던 타임스 비하인드

     

     

     

     

     

    찰리 채플린은 무성 영화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습니다. 감독, 제작, 각본, 음악, 편집, 주연을 다 맡은 찰리 채플린은 여기서도 주인공으로 나옵나다. 찰리 채플린의 첫 유성 영화 모던 타임스에도 대사가 없었으며, 채플린의 떠돌이 페르소나와 무성영화를 향한 애정에 마침표를 찍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전작 시티 라이트에서는 배우들이 유성 영화에 익숙해져 몸짓 연기를 잊어버린다고 한탄을 할 정도였습니다. 관객들 사이엔 '채플린은 목소리가 안 좋아서 유성 영화를 피한다'는 루머가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저 무성 영화를 사랑했을 뿐입니다. 모던 타임스에서 처음으로 채플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온 관객들은 실망감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목소리는 스피커나 레코드판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에 한했고, 그 외의 실제 대사는 여전히 묵음 처리였기 때문입니다. 채플린은 영화 후반에 가서야, 그것도 대사가 아니라 노래로 처음 자신의 목소리를 선보였는데 그 노래가 그 유명한 '티티나를 찾으러 왔어요'입니다. 이 노래 선율은 채플린 자신의 것이 아니라 레오 다니데르프 라는 프랑스 작곡가가 1917년에 발표한 폭스트롯 풍의 가요입니다. "티티나를 찾으러 왔어요"는 가사가 있어서 어떠한 뜻이 있는 것 같지만, 가사를 잃어버리자 개민이 "노래해요!! 가사는 상관 말고."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단순히 가사처럼 들리게 흥얼거렸을 뿐입니다. 실제로는 애드리브와 언어유희가 느껴지는 유럽어 계열의 외국어를 한데 버무린 것이어서 어떠한 뜻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개민이 써 준 가사의 내용과 몸짓으로 보아서는 '어떤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가 택시를 같이 탔는데, 여자가 남자의 다이아몬드에 반한다'는 내용으로 해석됩니다. 이 풀영상에서 Dana Hall이 적은 댓글을 보면 음절별로 해설이 다 되어 있습니다. 배우이자 감독으로 무성 영화 시대를 지낸 채플린이 처음으로 낸 목소리는 아무 뜻도 없는 소리라는 것과 그런 엉터리 가사에 기뻐하는 극 중의 사람들. 이렇게 찰리 채플린은 자신의 최초의 목소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연기의 대가답게 발성과 라임이 엄청나기도 합니다. 15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약 800만 달러 가량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채플린의 영화가 빨갱이라며 수입이 금지되어 개봉하지 못했고 전면 해금된, 채플린의 탄생 100주년이 된 1989년 12월 9일에서야 개봉, 관객 26만 5천 명을 동원하며 당시에는 꽤 성공했습니다.

    영화 줄거리

    전기철강회사의 공장 노동자 찰리(찰리 채플린 扮)는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나사못을 조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돌출부위를 신속하게 조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에 부착된 단추를 보고도 양손에 스패너를 들고 쫓아가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지게 된다. 찰리가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을 때, 그가 다니던 공장은 휴업 중이었다. 거리를 방황하던 찰리는 무심코 파업 시위대의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걷다가 주동자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갇힌다. 집도 없고 직장도 없어진 찰리는 먹여주고 재워주는 감옥살이에 점차 적응이 되어서 나가기가 싫었는데, 교도소에 침입한 강도를 퇴치하는데 공을 세우는 바람에 취업추천서까지 받고 석방된다. 한편,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부둣가에서 가난하게 살던 소녀(폴레트 고다르 扮)는 실업자였던 아버지마저 불량배의 총탄에 맞아 죽는 바람에 고아가 된다. 두 여동생과 함께 소년원으로 이송되던 소녀는 혼자 도망쳐 나와 빵집에서 빵을 훔치다가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찰리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려고 자신이 빵을 훔쳤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소녀의 범행으로 밝혀지면서 풀려나게 된 찰리는 일부러 고급 카페에 들어가 무전취식을 하고 주인의 신고로 체포되어 경찰차에 실려 간다. 소녀도 잡혀서 그 차에 태워진다. 다시 만난 찰리와 소녀는 경찰차가 교통사고가 난 틈에 도망을 치지만 갈 곳이 없다. 찰리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집이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직장을 찾아 나선다. 교도소에서 받은 취업추천서 덕분에 백화점의 야간경비원으로 취직한 찰리는 백화점이 폐장한 후 소녀를 데려와 식당코너에서 밥을 먹이고, 장난감코너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옷가게 진열대 위에서 늦잠을 자던 찰리는 손님의 신고로 경찰에 넘겨진다. 며칠 후 풀려나자, 소녀가 낡은 판잣집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거기서 공장 재가동 소식을 듣고 복직한 찰리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루되어 또 잡혀간다. 다시 석방되었을 때, 소녀는 고급식당의 댄서로 취직해 있었다. 찰리는 소녀의 도움으로 그 식당의 종업원 겸 가수로 일하게 된다. 처음 무대에 선 찰리가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노래를 부르는데,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와 함께 앙코르까지 터져 나온다. 식당의 사장은 찰리에게 고정계약을 하자고 한다. 다음 차례로 소녀가 춤을 추려고 무대로 나가려는데, 기관원들이 들이닥쳐 소녀를 다시 소년원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찰리와 소녀는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다. 얼마나 걸었을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찰리는 풀이 죽은 소녀에게 ‘기운 내. 우린 잘할 수 있어!’ 하고 격려하며 여명을 뚫고 함께 걸어가면서 영화가 끝이 납니다.

    후기

     

     

     

    ‘모던 타임즈’는 1930년대 고도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밑바닥의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소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주는 흑백무성영화입니다.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함박웃음! 찰리와 소녀의 행복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마지막에 식당에서 찰리가 부르는 노래만 육성으로 나오는데요. 오늘날의 자동화시대를 보여주면서 시계에 의해 지배되는 기계문명과 자본주의의 인간성 무시에 대한 분노를 묘사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시대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공장과 건설현장의 일용직을 전전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해왔고, 부유층은 이들을 착취하며 호의호식(好衣好食) 해왔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가난한 유년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그의 영화는 빈곤과 억압, 착취 등 현실적인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며 뜨거운 감동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그런 비극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기도 합니다. 점심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동으로 밥을 먹이는 회전판 급식기를 찰리에게 테스트하는 장면, 컨베이어벨트에 빨려 들어가 거대한 톱니바퀴 위에 누워서 너트를 조이는 장면, 사장실에 설치된 스크린이 지금의 CCTV처럼 공장 곳곳의 상황을 감시하는 장면 등은 채플린의 해학과 풍자, 혜안이 돋보이는 명장면들입니다. 1931년, 찰리 채플린은 영화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타임지의 표지인물로 나왔고,‘천년을 빛낸 인물 100인’에도 선정되어 뉴턴과 베토벤, 아인슈타인 등과 나란히 천재 예술가로 추앙받는 영원한 우리의 작은 영웅의 소중한 영화를 보고나니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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